1. "자유 가운데서도 가장 소중하고 또 유일하게 자유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 것은, 다른 사람의 자유를 박탈하거나 자유를 얻기 위한 노력을 방해하지 않는 한, 각자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는 자유다." - 존 스튜어트 밀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면 자유로워도 되는 것일까. 어디까지 허용되는 것일까. 특히 예술에서는?
2. 1997년 영국 현대미술 컬렉터인 찰스 사치(Charles Saatchi)의 소장품으로 <센세이션>이라는 전시가 왕립 미술 아카데미에서 개최되었다. 당시, 전시되었던 작품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는 죽은 상어를 전시한 작품, 채프먼 형제은 벌거벗은 아이 마네킹을 전시한 <끔찍한 해부>, 트레이시 에민은 텐트에 함께 잔 사람들의 이름을 적어 놓은 <텐트> 등이 있었다. 그중, 이번에 언급하고 싶은 작품인 마커스 하비의 <미라>가 있다.
(사진을 첨부할까 했는데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생략하겠다)
마커스 하비의 <미라>는 미라 힌들리라는 연쇄 살인범으로 1963년부터 65년까지 공범 남자 친구인 이언 브래디와 5명의 아이들을 성폭행하고 살해한 사람이다. 영국 역사상 최초로 쾌락을 위해 죽인 살인범이고 그녀의 초상화를 4미터가 넘는 대형 초상화로 아이들의 손 모형을 석고로 떠서 찍는 방식으로 만들었다. 유감을 표하긴 했지만 (다시 찾아보니 누구는 확고히 작가를 옹호했다고 하는데 뭐가 맞는지 모르겠다) 당시 전시회장 앞에는 혐오스러운 부분이 있을 수 있다는 경고문이 붙어있었다고 한다.

우리는 이런 것을 '작품'으로 인식해야 할까? 2차 가해로 이어질 수 있는 부분이고 논란이 될 여지가 충분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전시를 할 수 있는 부분일까? 가능하다면, 혹은 가능하지 않다면 그 경계는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당시, 1990년대는 지금처럼 '인권'에 대한 인식이 크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만 이 작품으로 인해 논란이 되었고 인권에 대해 생각해 볼 계기가 되었다면 그것은 작품으로 인정이 되는 것일까? '제도'가 따라가지 못하던 시기에 예술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여론 형성의 기회로 다가온다면? 훗날 문제제기가 될 수 있지만 당대에는 문제로 인식되지 못했다면, 그것은 훗날에야 작품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 되는 것인가?
3. 해외로 갔으니,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자. 올해의 작가상 2020에서 정윤석 작가의 '내일'이라는 영상 작업이다. 중국에 있는 섹스돌 공장과 그 안에서의 이야기들을 다룬 부분이 있었다고 한다. 보지는 못해서 감히 내가 뭐라고 평가하지는 못하겠다. 하지만 어찌 보면 인형의 부품으로 볼 수 있는 신체의 일부분을 중점적으로 찍는 과정이 담겨있었고 이것이 논란이 되었던 것이다. 외설과 예술의 경계는 무엇일까. 단지 그것이 '미술관'으로 가져왔다고 작품이 되는 것일까. 두 번째 의문. 이것을 여성 작가가 찍었다면 그것 또한 논란이 되었을까. 되었다면 어떤 식으로 논란이 되었을까. 과연 어떠한 시선으로 작품을 그려야 하는 것일까. 페미니즘이 뭘까. 왜 결론이 여성 혐오로 끝나야 하는 걸까. 인간 전체로 볼 수는 없는 전시였나?
섹스돌이 범죄율을 낮춰준다? 말도 안 되는 개소리 집어치우라고 하고 싶다. 아주 위험한 발언이다. 비인간을 두고 범죄율을 낮출 수 있다를 운운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 건가? 미국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하니, 너에게도 총기를 허용하겠다, 이거랑 뭐가 다른가?
다시 전시로 돌아가자. 작가가 어떤 의도로 이걸 내놓았을까?를 봐야 하는 걸까. 롤랑 바르트는 '저자의 죽음'이라는 말을 쓰며 독자의 탄생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그렇다면 과연 의도가 중요한 것일까. 의도가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더라도 의도가 중요한 것인가? 발신자의 의도가 수신자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면 그것은 좋은 예술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물론 열린 해석이 중요할 수도 있겠지만 이처럼 사회적으로 논란이 될 수 있는 작품이라면? 그게 좋은 예술일까.
4. 이제 다시 논제로 돌아가 보자. 예술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 절대. 이게 내 대답이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라는 행위예술가가 있는데 나와 너무 비슷한 의견이라 흥미로워 인터뷰 전면을 첨부하겠다.
[문명, 그 길을 묻다 - 세계 지성과의 대화](8) 행위예술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 경향신문 (khan.co.kr)
[문명, 그 길을 묻다 - 세계 지성과의 대화](8) 행위예술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이 쓰는 단어 가운데 ‘재난사회’란 것이 있다. 이는 ‘너무 늦은’ 상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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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기존 사회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수 있고 그렇게 사람들의 인식을 변화시킬 수 있다. 거기까지가 예술의 몫인 것이다. 제도를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것은 그 이후, 사람들의 몫이다. 예술은 논란이 되고 여론을 형성하고 문제제기를 할 수 있지만 이에 대해 해결안을 내놓는 것은 그 이후 관람자를 비롯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몫인 것이다. 위의 작품들은 충분히 논란을 제공했고 (물론 관심 끌기를 위한 행위에 불과하다고 볼 수 도 있겠지만 그건 또 다른 문제인 것 같다. 어떤 시각에서 보느냐에 따라 또 다른 문제니까) 그것이 사람들에게 어떠한 생각을 불러일으키고 그래서 그것의 경계가 뭔데?라고 질문을 할 수 있게 했다면 충분히 의미 있는 행위 아니었을까.
그래서 예술의 역할은 거기까지인 것이다. 그 이후는 우리 몫이고.
위의 수많은 질문들은... 사실 아직도 고민 중이다. 나만의 해답을 찾고 있는 중인데 아직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의문이 생기도 답을 찾지 못했다. 분명 내 생각 중에 잘못된 부분이 있을 것이고 계속해서 생각이 변하긴 하겠지만, 지금의 나의 생각은 이러하다. 아직도 많이 부족하고 멍청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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