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셋.

2021.06.27 낮공 맥베스 트라이아웃

noey_ 2021. 6. 28. 20:00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해서 단독 콘서트도 보러 갔었던 정재일 작곡가 겸 음악감독님께서 이번에도 좋은 작품을 하신다기에 취소표를 잡아서 가게 되었다. 내용을 모르면 이해하기 힘들 것이라고 해서 책도 급하게 구해서 읽다가 갔다. 내가 상상했던 이미지와 완벽하게 맞지 않는 캐릭터들이 있어서 이건 내가 책을 다시 읽어봐야 할 것 같지만 아무튼, 공연 자체는 정말 신박했다.
음악극이라고 하기엔 연기가 너무 돋보였고 연극이라고 하기엔 대사가 묻힐 정도의 음향이었다. 무대 왼쪽에는 음악감독이, 오른쪽에는 배우가 앉아서 진행되었다. 두 분 모두 극에서 연기를 하셨는데 그게 그렇게 짜릿할 수가 없다.
극은 총 10개의 씬이 토막토막 나뉘어 70분 동안 진행되었다. (말이 70분이지, 80분 공연한 듯) 트라이아웃이라 사실 많은 기대는 하지 않았으나 기대 이상이었다. 다만 이게 토막 난 장면들이라 영상물로 찍었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괜히 공연이 올라와서 완성본이 아니라 영원히 미완성으로 남게 되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무튼, 다시 극으로 돌아와서, 스포가 싫다면 보지 않으시길. (업로드는 트라이아웃이 끝난 6/28로 지정했습니다만 완성본이 언제 나올지는 기약이 없으니...)

 

SCENE


scene #01. 예언과 코더 처형 있기까지의 내용. 피아노 연주와 함께 진행되는데 사실 이때, 극 자체를 이해하는데 혼란스러워서 이해를 제대로 하지는 못했다.


scene #02. 맥베스가 맥베스 부인과 대화하는 장면 : 책으로 치면 1막 마지막 장면, 부인이랑 예언에 대해 말하고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말하는 부분으로 기억하는데 와... 나 여기 진짜 충격 대 충격.... 부인 말투 왜 저래, 하면서 봤는데 아니 19 씬이었냐고요... 당황스러부러라.... 일렉 기타로 연주하면서 배우님이 몸을 정말... 잘 쓰시면서 진행되는데 어느 순간에 딱 이해되면서 아...? 책 다시 읽어봐야겠네? 싶었던 장면이면서 2명의 연기가 전환되면서 진행되는 재미에 빠져 극에 확 몰입해서 보게 되었던 것 같다.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모든 사람을 속입시다. 마음 속의 흉악한 거짓은 가면으로 감추고 말이오"


scene #03. 아 여기 씬을 이렇게 나눠도 괜찮은 건지 의문인데, 책의 2막을 다루는 부분이었다. 뱅코와 뱅코 아들이 맥베스와 인사하고 맥베스랑 맥베스 부인이랑 대화하는데 올빼미, 귀뚜라미 소리 못 들었냐고 대화하며 그 불안해하는 듯한 대화가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맥베스가 왕을 살해하고 왕의 아들들과 모두가 있는 곳에서 여러 목소리가 섞여 우는 연기도 너무 충격이었다. 정말 홀린 듯이 봤는데 정신 차리고 보니까 씬이 끝났었다. 여기 씬이 정말 미쳤었다.
여기서 내가 진짜 좋아하는 대사가 맥베스가 "저 위대한 냅튠의 모든 바닷물을 쓴데도 내 손에 묻은 피가 깨끗이 씻길까? 아니다, 내 손이 오히려 그 무한한 바닷물을 핏빛으로 물들여, 푸른 바다를 붉게 바꿔 놓겠지."라고 하자, 맥베스 부인이 "내 손도 같은 색이 되었군요 (중략) 이 일은 약간의 물이면 깨끗해질 테니, 얼마나 쉬워요?"라는 부분이 있는데 맥베스의 대사를 엄청 길게 음악과 풀어내어 감정선이 극적으로 치닫게 했지만 맥베스 부인의 대사가 생략되었다는 게 아쉬웠다. 개인적으로 저 대사가 맥베스 부인 극 초반의 강인한 성격을 제일 잘 나타낸다고 생각하는 부분이라 기대하고 있었는데 아쉬웠다. 극 진행이 짧다 보니 극 초반, 후반 모두 죄책감을 느끼는 여성으로 그리고 싶었던 것인지, 내가 생각했던 부인 성격이랑 조금 달랐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 같은데 극을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부분이기도 하다. 내가 초반에 갈피를 못 잡아서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으니까.

scene #04. 책의 3막 중, 자객과의 대화 중 개 관련된 부분을 노래로 진행했다. 처음에 들었을 때, 음향이랑 일렉기타랑 소리가 겹쳐서 저게 한국어인가... 하고 들었는데 아는 대사가 들리면서 아, 이 씬이겠구나... 하고 들었다. 맥베스의 대사 중, "그렇다. 명목상으로는 너희도 사람 축에 들 테지. 사냥개, 그리이하운드, 잡종 개, 스파니엘, 들개, 털개, 땅개, 늑대가 모두 개라는 이름으로 불리듯이. 그러나 감정서에는 빠른 개, 느린 개, 똑똑한 개, 집 지키는 개, 사냥개 등 풍요로운 자연이 각각 부여한 재능에 따라 모두 구별되어 있는 법이다. 그리고 인간도 마찬가지지."라는 대사가 있는데 이 부분을 가사로 해서 불렀다. 이 부분도 내가 책에서 느꼈던 감정이랑 엄청 달라서 또 다른 충격이었다. 난 굉장히 차분하게 전달하는 느낌으로 읽었는데 락 느낌으로 진행되는 부분이라 그랬는지, 내가 생각했던 것과 또 달라서 이 부분도 아주 흥미로웠다.

scene #05. 파티 장면. 뱅코를 죽인 파수꾼이 피범벅인 상태로 연회장에 들어와 이 소식을 전하고 맥베스가 뱅코의 유령을 보며 환청을 듣는 장면이다. 이 부분은 배우 연기가 정말 대단했다. 보는 내내 소름이 돋았고 악령에 씐듯한 느낌이라 정말 무서웠다. 그러는 와중에 맥베스 부인의 대사 (여기도 대사가 정말 주옥같은데)를 치는데 그것도 너무 소름이었다.

scene #06. 책의 4막 중, 1장 예언 부분이다. 기억력이 좋은 편은 아니지만 scene #01과 같은 음에 변주가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같은 예언이라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연결되는 느낌이라 기분이 묘했던 기억이 있다. 환영과 대화하는 장면으로 아는데, 이 부분은 배우가 자신의 얼굴에 무언가를 칠하는 듯한 행동과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대사를 했다. 이걸 이렇게 표현한다고? 하면서 또 소름이 돋았던 장면이다.

scene #07. 4막 2장인 맥더프 부인과 아들의 새에 비유하여 삶을 살아가겠다 하지만 결국 아들이 살해당하는 장면인데 이 부분도 아이의 목소리로 노래하듯이 전개되었다. 이 장면도 나름 소름이었는데 그냥 그 어린아이의 목소리로 해맑게 말하는, 하지만 부인은 걱정, 두려움, 불안 모든 부정적인 감정들이 합쳐 아이에게 질문하고 답하는 상반된 부분이 소름이었던 것 같다. 앞뒤로 감정선이 너무 강해서 여기부터는 나의 집중했던 감정선이 무너져내려 버린 듯, 멍하게 관람해서 정확히 어떤 감정으로 봤는지 기억이 없다. (역시 관극은 정신력, 체력 좋을 때 해야만... 운동을 합시다...) (아, 이 부분이었는지 이다음 씬이었는지 기억이 안 나는데 통기타로 연주할 때, 도리안 그레이 넘버 생각이 났다. 그러다가 어, 무대도 검은 게 비슷하네, 조명으로만 하는 것도 비슷하고... )

scene #08. 배우가 신발을 벗고 양말도 벗은 채, 맨발로 의자에 앉은 채, 뛰는 소리, 걷는 소리, 발을 꼼지락거리다가 괴로운 듯 비틀기도 하고 발마저도 연기하는 모습을 보인다. 원래 의사와의 대화로 알고 있는데 직접적으로 맥베스와 맥베스의 아내의 대화로 옮긴 듯하다. (사실 대사가 잘 들리지 않아 정확하지는 않을 수도 있다) 이 부분은 맥베스 부인의 감정선이 발 끝의 움직임으로 많은 것을 보여주었고 이 부분에서 이 극을 영상물로 찍어도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scene #09. 숲이 다가와 맥베스와 맥더프의 전투 장면. 여기서 아, 정재일이 정재일 했다, 하고 감탄했던 장면이다. 국악을 사용해서 감정선을 고조시켰는데 만약 여기에 대사가 많았다면 집중이 깨졌을 것이다. 배우는 몸으로 1인 2역을 하며 싸우는 연기를 하고 음악 소리는 점점 커지면서 꽹과리 소리가 그 감정을 고조시킨다. 두려운 듯 뒷걸음질 친 의자와 배우, 페이드 아웃되는 조명까지. 정말 모든 게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면서 내가 이거 보려고 왔구나, 싶었다.

scene #10. 책에는 없는 씬. 맥베스의 잘린 머리가 걸려있고 바람에 흔들린다. 자유다. 평화다. 이런 대사가 있었던 것 같은데 극 자체가 감정. 감정. 감정. 이렇게 치닫는 편이라 피곤했었는지, 저 "자유"라는 단어에 왠지 모를 해방감을 느꼈다. 아무튼, 바다에 가라앉는 듯한 소리가 나며 페이드 아웃되어 극이 끝난다. 그리고 영원히 맥베스의 잘린 목은 거기에 있겠지...

 

하... 또 쓰다보니까 말 많아졌어 (노답)


정확히 어떤 씬인지 기억 못 하지만 좋았던 연출들.


- 내레이션 시점이 계속 변화하는 것. 1인칭 시점일 때는 지문을 '네가 걸어온다'와 같이 말하는 것들에서 감정 몰입이 더 잘 되었고 3인칭 시점일 때는 인물이 많이 나올 때 정신 차리고 볼 수 있게 해 줘서 좋았다. 하지만 역시... 이 극은 텍스트 모르면 정말 이해하기 힘든 것 같다. (읽은 나도 이렇게 멍청하게 주절주절 쓰고 있는데 (아니 그건 님이 멍청하신 거고))
- 조명. 사선으로 조명 써서 배우 뒤에 연주자 그림자가, 연주자 뒤에 배우의 그림자가 보였을 때가 있었는데 아, 둘 다 몰입해서 연기하고 있구나, 지금 여기 있는 모두가 완전히 몰입했구나 하는 듯한 느낌을 줘서 너무 좋았다. 색온도 다르게 해서 쓴 조명도 좋았는데 아직도 이 조명이 좀 신기하다. 분명 위에 있는 하얀 판에서 나오는 것 같은데 정신 차리고 위에를 보면 위는 계속 하얀 조명이다. 그런데 무대에 집중하면 분명 색이 보인단 말이지...? 그런데 또 그거 아니면 조명이 나올만한 곳이 없고? 아무튼 신기하고 집중에 방해되지 않는 신기한 조명이라 기억에 남는다.
- 배우가 바람 소리, 미세한 숨소리와 웅성거리는 소리들을 입으로 낸 것. 아, 이건 정말 신박해서 충격이었다. 당연히 저 바스락거리는 소리는 음향이겠거니, 했는데 배우가 중얼거리고 소리 내고 있는 걸 보고 신기했다. 정신적으로 엄청 힘들 텐데...
- 극 시작할 때, 배우가 다리를 손으로 쿵쿵 쳤는데 아, 긴장 푸는 건가? 했는데 긴장은 무슨.. 입장부터 벌써 감정이입 끝나서 바로 연기하신 거더만... 이것도 이렇게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다는 게 너무 영광스러웠다. (이렇게 온전한 연기를 가까이에서 본 게 처음이라 충격이 좀 컸다.)

거 관극하기 딱 좋은 날씨고만^~^

후기

극 자체가 굉장히 불친절하다. 당연하다. 미완성에 아카이브식 구성이라 모든 걸 해체한 극이다. 게다가 극적인 감정만 치닫다가 심해로 가라앉듯 끝나버린다. 그렇기에 호불호가 많이 갈릴 것으로 보이고 피곤할 수 있는 극이다. 지극히 현대 예술 같고 행위예술 같은 극이다. 그런데 난 그렇기에 더 좋았다. 이런 극이 흔하지는 않으니까. 맥베스의 인생을 본 것이 아니라, 그래서 난 어떻게 살아갈 건데? 어떻게 살아야 하는데?라는 질문을 하게 만든다. 나는 두 개의 노래를 들으며 이 생각을 참 많이 했다. 묘하게 일렁이는 듯했다. 두 분의 개성이 아주 잘 드러나는 극이었고 그렇기에 팬들은 좋아할 것 같고 서사보다 다른 사람의 해석은 어떨까 라는 생각으로 간다면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극호였고 약간 충격으로 다가왔다. 시험 끝나고 머리 쓰고 싶지 않았는데 또 머리 쓰게 생겨서 아주^~^ 행복하다.

 

마지막으로 아래 링크는 최근 너무 인상적으로 본 맥베스 독백 연기... 요즘 독백 연기들 모음 보는 게 너무 좋다.

(1) EP3. 맥베스 독백 - 배우 3명의 릴레이독백 (셰익스피어 4대 비극) Macbeth Soliloquy ㅣ배우 박성은, 임예은, 김가빈 - YouTube

 

'... > 스물셋.'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0) 2021.07.16
2021.06.30 렁스  (0) 2021.07.01
2021 상반기 영화 정산  (0) 2021.06.22
2021.05.28. 피카소 탄생 140주년 특별전: Into the Myth  (1) 2021.05.30
uncut gems  (0) 2021.0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