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셋.

2021.06.30 렁스

noey_ 2021. 7. 1. 12:41

 

이동하 X 정인지 페어

믿고 보는 연극열전. 저번 시즌에 못 본 게 너무 아쉬워서 이번에 보려고 벼르고 벼르다가 전날 결제했다. 자첫이고 이번 시즌은 자막이겠지만 다음 시즌에 또 볼 것 같다. 대사 순서도 기억 안 나고 극 자체도 의식의 흐름처럼 툭툭 던져지니까 이번 후기는 나도 툭툭 써 내려가야겠다. (그냥 정리하기 귀찮았다고 해) 

 

스포 있음 주의!!

 

- 동하 남자는 리트리버같다. 여자가 엄청나게 쏘아붙이고 자기 말만 하는데 대사에서도 그랬듯이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서 가만히 들어주는 거, 그렇지만 너무너무 사랑해서 계속 보고 싶고 알고 싶어 하고 곁에 있어주려고 한느 거 모든 게 너무 사랑스러운 남자였다. 엄청난 리스너인 거지. 나는 나 혼자서도 조잘조잘하는 편이라 완전 여자 재질인데. 인지 여자는 이성적이지만 모순적이고 강인하다. 그렇지만 귀엽고 사랑스럽다. 그리고 히스테릭해. 그런 여자를 다 받아주는 남자가 처음에는 너무 좋았다. (그렇지만... 쓰읍...)

- 남자 독백 중, "네가 가끔 나한테 상처를 주기도 하는데 난 괜찮아"라는 대사가 있다. 남자 독백이 너무 좋았다. 남자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모든 행동에서 남자가 왜 그런 선택을 했고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가 보였다. (그렇지만... 그 선택은 용서 못함)

- 여자가 유산하고 남자는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한다. (그래 (험한 말) 네가 키스를 했든, 섹스를 했든, 어쨌든 했다는 거부터가 쓰레기야 (험한 말) 그리고 그걸 여자한테 아무렇지 않게 말하면서 사랑한다고 해? 할 거면 걸리지나 말던지)

- 그렇게 헤어지고 생각 없이 살다가 다른 여자를 만나고 다시 만난 여자와 잤고 (험한 말) 그런데 알고 보니 그 다른 여자는 약혼녀였고 (험한 말) 진짜 너는... 나가 죽어

- 장면 전환이 바로바로 바뀌는데 처음에 적응 못해서 얼타다가 너무 재밌었다. 케이크 사줘! 여기! 이런 사소한 것들이 너무 귀엽고 재밌었다. 

 


M: 우린 좋은 부모가 될 거야. 

W: 질문은 할 수 있잖아.

M: 그럼.

W: 좋아.

M: 그런 질문이 우리를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줄 거야.

W: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모두 자신들이...

M: 의문조차 갖지 않는 사람들도 있어.

좋은 사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지만 그렇게 되는 건 힘들고 결국 우리는 모두 이기적인 인간이라는 거. 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좋은 사람인가 라는 것에 고민해보고 정답은 아니더라도 더 나아지는 방법을 찾고 행동하려는 것. 그 자체가 우리는 적어도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것 아닐까. 그래, 우리는 불완전하고 불안정한 존재이고 누군가와 함께 하다 보면 더 나아지고 그래도 버틸만한 세상이 되는 거 아닐까. 

좋은 부모는 또 뭘까. 자식의 입장에서, 부모의 입장에서 좋은 사람이라는 건 다른 얘기겠지만. (그게 인간 대 인간으로서 좋은 사람인 거랑 여기서 계속 말하는 지구의 입장에서도 또 다른 얘기겠지) 극에서 흥미로웠던 대사가 있다. 여자가 했던 대사인데 "그 애가 또 자식 낳고, 그 애의 자식의 자식이 몇 명을 낳는지, 그 애의 자식의 자식의 자식이 몇 명을 낳는지에 따라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니까. 재활용이니, 전기 자동차니, 에너지 효율 따지는 거 다 소용없어. 애 낳는 걸 멈추지 않으면 이 세상 완전 개판되는 거야" 그리고 그걸 계산해서 비행기 타는 거랑 따지는 거. 아이가 너네 부모님 닮지 않았으면 좋겠어. 우리 부모님 싫어? 어! 하면서 서로 부모님 싫다고 하는 것도 너무 현실적이어서 웃겼고. 아무튼. 환경이랑 가족, 연인, 사랑... 그 외에 모든 것들. 감정, 생각, 행동, 서로 말 못 했던 것들, 아니, 말하지 않았던 것들, 그런 것들에 대해 이렇게 깊게, 다른 입장에서 직설적으로 본 건 처음이라 새로웠고 좋았던 것 같다. 나도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극에서 보이는 여자 같네ㅎ)

- 신발 위치와 놓는 순서가 의미가 있는지 궁금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의미는 없는 것 같다. 다만, 언제 벗는지, 언제 맨발로 돌아다니다가 다시 신는지가 중요한 것 같다. 남자가 직장을 가졌을 때, 여자가 임신했을 때, 유산, 헤어지고 서로 새 인생 다시 살 때... 모두 인생에 큰 전환점일 때이다. 


"숨 쉬어" 

남자가 계속해서 여자에게 해주는 말이다. 생각에 생각을, 아무 감정, 생각이나 모두 쏟아내 버리다 보면 나도 모르게 숨도 안 쉬고 쏟아내고 있다. 그때, 잠깐 멈추고 숨 쉬고 입 닫고 팔 벌리고 그냥 안아주는... 그런 사람이다. 그래서 제목이 '렁스'아닐까. 서로를 숨 쉬게 하는 존재는 서로였으니까.

(정말 인정하기는 싫은데 나 말하지 않으면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계속해서 확인하려고 기웃거려주고 숨 쉬라고 해주는 저런 남자가 너무 내 이상형이라 너무 좋은데 근데 넌 쓰레기 똥차니까 좋아하면 안 되는데 너무 좋아ㅠ 짜증나ㅠㅠ)


마지막에 남자가 떠나고 "나 자꾸 깜빡깜빡해. 사람들이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 모르겠어. 그립다. 당신이랑 얘기하는 거. 여기서는 늘 혼잣말해. 우리가 만든 숲은 사라졌어. 나무도 없어. 나는 이제 뉴스도 안 봐. 점점 더 나쁜 이야기들 뿐이라서. 온통 재로 뒤덮였어. 그 애가 나한테 먼지 좀 그만 털라고 잔소리한다?"라고 여자가 혼자 말한다. 울컥했던 거 나만 그래?

마지막 디테일로 동하 남자는 신발을 쓰윽 문지르고 간다. 아래에서 여자를 참... 편안하게... 따뜻하게 바라봐주는데... 그게 그렇게 예쁘고 사랑스러울 수가 없어. 아 큰일 났다. 나 치인 것 같다. 


어렵다. 

텍스트도 많고 빠르게 치고 나간다. 계속 생각해야 하고 생각을 너무 깊게 하다 보면 다음 주제로 넘어간다. 생각해야 하는데 생각할 시간이 없어. 다시 보고 싶은데 텍스트를 먼저 보고 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 씨뻘개지고 메이크업 다 지워지고 머리도 다 엉클어질 정도로 이 페어는 둘 다 감정적이다. 어리고 미숙하지만 더 나은 사람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었다. 너무 좋은 조합이고 다음에 또 보고 싶은 조합이라 전날 예매해서 보러 왔지만 후회 없이 너무 행복하게 잘 보고 왔다:)